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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에서 벗어나기
2부 : 호주의 노동자
3부 : 꿈의 직장, 공항면세점
4부 : 첫 사업 실패
5부 : 다시 직장으로
6부 : 월급에서 벗어나다
21살의 겨울 호주 브리즈번으로 날아갔다.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내가 살던 브리즈번이 속한 퀸즐랜드의 시티잡과 팜잡으로 나눠진다. 시티잡은 말 그대로 시티 안의 일. 가령 레스토랑 서빙, 세일즈, 호텔 관련 업무 등이 있다. 팜잡은 농장일이다. 학교를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팜잡은 불가능했다. 시티잡을 얻기 위해 끝없이 이력서를 냈으나 브리즈번 시티 내 직장을 원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았다. 게다가 그 해에는 흉작으로 팜잡의 사람들까지 시티로 왔었으니... 면접을 한 번 보러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호주에서 첫 직장은 선글라스 세일즈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나는 매우 내성적이고 소심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돈이, 궁핍이 내 성격도 바꿨었는지... 코스메틱 브랜드의 일은 즐거웠다. 접객도 크로스/업셀링도 모두 하나의 게임 같았고 고객의 카드를 받고 결제하는 순간은 공략을 성공한 듯 짜릿했다. 포지션 리스트에 올라온 '세일즈'를 보고 이건 내 직장이라 확신했다. 이력서에는 한국 뷰티 코스메틱 세일즈 경력을 줄줄 넣고 말미에 '나와의 인터뷰를 절대 잊지 않게 해 줄게'라고 썼다. 뭔 자신감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그게 통했는지 이력서를 넣은 지 30분 만에 전화가 왔다. 거의 10년 전의 기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건 이 순간이 내게 그 만큼 소중했다는 증명이다.
짧은 인터뷰를 끝내고 사장은 조심스럽게 시급이 최저시급에 미치지 못하며, 그러나 판매에 따라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데도 괜찮겠냐고 물어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장이 말한 금액은 한국의 최저시급 2배 이상에 달했기 때문에 기쁘게 받아들였다. (13 달러인가 그랬던 것 같음. 이때 최저시급이 아마 15달러...? 가물가물함) 거기에 모아놓은 돈도 거의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아사할 위기에 쳐했었다. 뭐든 하는 게 좋았다.
브라운필즈 쇼핑센터에서 트라이얼을 했다. 한국에서는 막힘없이 하던 세일즈를 영어로, 그것도 다른 상품군을 판매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쇼핑센터 내의 위치한 팝업스토어라는 점은 입장 허들이 낮아지고, 내가 좆밥처럼 생긴 아시안 여자라는 점도 세일즈에 용이했다. 처음 2시간은 어려워하다 담배를 3개 정도 이어 피며 세일즈 라인을 정리했다. 입객 멘트/스몰토크~스몰토크에서 선글라스로 이동/하나가 픽스되면 업셀링/마무리 멘트. 어디서 무엇을 팔던 사람 지갑을 열게 하는 건 다 똑같다는 진리를 다수의 아르바이트와 허기를 통해 21살에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트라이얼을 한 사람 중, 아니 자신의 직원들 중 가장 열정적인 세일즈였다며 칭찬과 커미션을 받았다. 물론 결과도 입이 째지게 좋았다. 브라운필즈에서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과 이렇게 뿌리를 내려갈 수 있다는 생각에 부풀어 올랐다.
선글라스를 신나게 팔고 있던 어느 날. 내가 일하던 쇼핑센터 내 스토어가 계약 종료로 문을 닫게 되었다. 사장은 매출이 가장 좋은 브라운필즈로 로테이션도 가능하다고 했으나 한 시간 반의 출퇴근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이력서를 돌렸는데 호주 내 경력이 있다 보니 이번에는 직장을 구하는 게 꽤 쉬웠다. 버블티 가게에서 일을 시작했다. 제 손으로 음료를 만들어 본 적이 없어 많이 걱정했으나... 전생에 노비였는지 뭐든 척척 잘하는 편이라 쉽게 배우며 일했다.
중국인이 하는 버블티 가게, 한국인이 하는 스시집, 호주인이 하는 회전 스시집 등등에서 일하다 마지막으로 일하게 된 곳. 아직도 내 마음에 짠하게 남아있는 곳. 처음에는 서빙으로 시작을 했으나 점점 높은 곳으로 올라가 거의 매니저까지 달고 나왔다. 퓨전 일식집인데 사장님은 인도인이고, 헤드쉐프~메인쉐프 모두 인도인에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 나는 한국인이었다. 같이 일하던 다른 서브는 프랑스...스페인...호주인...그나마 동아시안 처럼 보이는 사람은 나뿐이라 고객들이 항~상 '넌 일본인이니?'라고 물어봤다. 처음에는 한국인이라고 해명했으나 나중에는 너무 바빠서 'ㄴㄴ 인도인임' 하고 대충 넘겼다.
내 로스트의 마지막 날. 가게문을 닫고 다 같이 이별주를 마셨다. 사장은 '살면서 너처럼 손이 빠른 사람을 본 적이 없다'라고 해서 '원래 한국인들은 대부분은 다 빠르다'라고 답해줬다. 평소에 먹고 싶어 했던 디시를 얻어먹으면서 '18살에 눈물바람으로 보냈던 스쿨푸드의 알바가 드디어 빛을 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쁘고 좋은 경험 할 것 없이 몸으로 터득한 경험은 자산이 되어 언젠가 돌아온다.
이 정도 주급이면 나쁘지 않았고 비자 문제도 해결되어 호주에서 당장 쫓겨날 일도 없었다. 그러나 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정착을 했는데 왜 한국으로 돌아왔어?!라고 물어보면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라고 답한다. 딱히 한국의 문화가 그립거나 하지는 않았다. (원래 밖에 잘 안 돌아다님) 정확히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으나, 해보고 싶은 일은 많았다. 세일즈도 다시 해보고 싶었고, 다른 언어도 배우고 싶었고, 언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호주에서 이민자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에 다시 돌아갔을 때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싫었다. 나를 실패자라고 부르면 어쩌지? 하나하나 붙들고 사실 나는 실패한 게 아니고 그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서라고 해야 할까? 그러다 나 먹고살기도 바쁜데 내가 남 걱정을 왜 사서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안되면 말면 된다!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아닌 것 같으면 다시 호주에 가면 된다! 아니면 다른 나라에 가면 된다. 나는 아직 젊고 사지도 말짱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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