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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에서 벗어나기
3부 : 꿈의 직장, 공항면세점
4부 : 첫 사업 실패
5부 : 다시 직장으로
6부 : 월급에서 벗어나다
호주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일은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없어서에 있었다. 버블티 가게에서 알게 된 친구는 나와 같은 유학생으로 홍콩 출신이었다. 만다린/캔토니즈가 유창했던 친구는 브리브번 공항 내 코스메틱 브랜드에 입사했다. 다른 브랜드에도 자리가 나서 지원을 해봤지만 공항은 구매력이 있는 아랍어/만다린 사용자를 선호했다. 낙방하다 보니 오기가 생겼다. 무슨일이 있어도 나는 공항의 저 자리에서 일하고 싶었다. 호주에서 안되면 한국에서 한다. 그래서 돌아왔다.
한국 역시 원하는 인재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창한 중국어가 필요했다. 호주에서 세일즈와 먼 길을 걸었기에 다시 세일즈를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코스메틱 브랜드에 지원했고 트라이얼도 없이 쉽게 붙었다. 호주에서 이민자 신분으로 어렵게 어렵게 직장을 얻다 한국에 돌아오니 세상 편했다.
퇴근 후 주3일은 중국어 학원에 가서 공항 면세점의 미니멈 조건인 HSK4급을 공부했다. 지지부진하면 이 생활에 만족하며 머무를 것 같았다. 3개월 쯤 공부해서 한 번에 HSK4급을 땄다. 자격증은 만들어졌으나 나는 부족했다. 한국에서의 경력은 길지 않았고, 대학교도 중퇴했고, 특별한 기술도 없었다. 이력서의 한 칸을 채우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하다 메이크업 자격증을 준비했다.
메이크업 자격증은 필기와 실기가 나눠져있었는데, 필기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충분히 패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필기를 준비하며 중국어 회화를 연습했다. 다시 한 번 주3일 퇴근 후 밤에는 메이크업 학원에 찾아가 실기를 연습하고, 쉬는 날에는 필기를 공부하고 지겨워지면 헬로우톡에서 만난 중국인들과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며 회화를 늘려갔다.
1년을 일하고 퇴사 후 한 달 뒤, 매일 학원에 나가 실기를 준비하고 첫 시험에 붙었다. 퇴직금도 있겠다 HSK5급을 준비해볼까 하던차에 원하던 공항 면세점 브랜드에 자리가 났고, 지원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다. 스스로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나, 준비의 여부는 회사에서 결정하겠지~~하며 지원했다.
내가 만들어간 한 줄 한 줄이 통했는지 감사히 서류가 통과되고 면대면 면접을 보게되었다. 정말 몇 년 만에 면접용 정장을 입고 저~멀리 서울로 면접을 보러갔다. 함께 면접을 본 친구들은 20살과 21살로 정말 가시나무 처럼 떨고있었다. 호주에서 면접만 골이 날 정도로 본 덕인지 가시나무길은 면하고 떨려서 울기 직전인 친구에게 초콜릿을 나눠주며 아무도 안 잡아먹는다고 다독여줬다. (이 친구도 같이 붙어서 타 브랜드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지나온 시간들에 보상 받 듯, 물이 미끄러지듯 합격했다. 트레이닝을 받고 브랜드에 배치되고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공항으로 출근했다.
내가 지금까지 원했던 일은 바로 이런거라 믿어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일은 즐거웠다. 각이 잡힌 유니폼을 입고, 사랑하는 코스메틱을 판매하고, 공항 면세점이라는 특성 상 업셀링/크로스셀링 모두 가능했다. 무엇보다 즐거웠던 일은 무한한 언어와 다양함에 있었다. 해외로 떠나는 내국인들에게 한국어로, 한국을 방문했던 외국인 고객에게 영어와 중국어 그리고 조금의 일본어로 접객하고 판매하는 그 모든 일이 즐거웠다. 고객에 따라 접객을 모두 달리해야 승산이 있는데 호주에서 서빙하며 길러놓은 눈썰미로 입점과 동시에 어느나라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여권을 확인했을 때 나의 추측이 진실이 되는 순간순간들은 정말 짜릿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 둘 방호벽을 입고 손소독제가 비치되었다. 너무 시끄러워서 출퇴근길에는 이어폰을 끼고 다녔는데 순간 내 구두소리가 공항을 울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알록달록했던 보딩판에는 빨간색의 결항만 떠다녔다. 출국객이 없는 공항은 시간과 정신의 싸움이었다. 출근은 하지만 일이 없었다. 우리는 시간과 정신의 방이라고 불렀다. 기묘할 정도로 고요한 공항에서 모든 불을 키고 오지 않을 고객을 기다리는 일은 고역이었다. 출국객은 방호복을 입었다. 마치 면세점에 결계라도 있는 것 처럼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지치기는 더 지쳤다. 휴무일수가 길어지고 하나 둘 문을 닫는 스토어도 생겼다. 희망퇴사자를 받는 곳도 생겨났다. 정직원을 조건으로 근무하던 계약직도 모두 잘려나갔다. 그 칼바람에 찢겨나갈지 혹은 스스로 찢을지 결정해야했다. 생기를 잃어가는 공간에서 나를 의탁하고 싶지 않았다.
직장에 대해 생각했다. 1년 365일 중 절반 이상인 약 3분의 2는 직장을 다니는 날이며 나머지 1/3이 휴일이다. 결국 나는 내 삶의 절반 이상을 직장에 할애한다. 내 시간처럼 보였던 시간의 대부분은 나의 시간이 아니었다. 내가 할애한 시간과 임금이 비례하는 삶을 원했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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